요새 이게 그렇게 재밌다고?
독서모임 사람들이 '달까지 가자' 가 다음 책으로 선정되었을때 매우 기뻐했던것을 기억한다.
비록 나는 제과수업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지만,
모임장인 가영언니의 장류진 작가 칭찬에 궁금해졌다.
더군다나 코인을 주제로한 현대물이라니, 심리 스릴러일까? 암흑가의 세력 뭐 그런건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녀의 호의로 책을 빌려놓고서도 막상 피곤하고 바쁘단 핑계로 바로 읽지는 못했는데,
'잠깐만 읽어볼까' 하고 시작한 저녁 7시의 독서가 밤 10시까지 논스톱으로 이어질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
정말 재밌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깔깔댄적이 얼마만이었지?
공감을 넘어 이건 거의 뭐 민간인 사찰
'흙수저 삼인방의 코인 롤러코스터 역전기'
코인 초창기, 그러니까 비트코인 외에 다른 이름들은 거의 알지 못했을때
주인공 다해는 친한 회사 언니 은상으로부터 이더리움의 존재를 알게되고,
전재산을 털어 들어간 코인판에서 살아남기위해 버티는 다해와 은상, 그리고 지송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회사 생활을 하다 데뷔를 해서 그런진 몰라도, 또래 직장인들의 삶을 아주 리얼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 역시도 적당한 유머와 현실감 넘치는 상황 묘사가 마치 내가 처한 상황을 빼다 박은 듯한 느낌에 몰입해서 읽게 되었다
뻔한 현실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재치가 장류진 작가의 장점이다.
내 얘기, 혹은 아는 사람 얘기. 지인의 지인 얘기.
작중 등장 인물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의 마음을 마구 움직여댔다.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현대인 누구나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비교심리 등을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하나하나 캐치해서 추측하고 재배열하고 그 아래에 내 자리를 만들었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그랬다. 잡담 속 은연 중에 흘러나오는 정보들.. (중략) 그런 걸 알고 난 후에는 그 사람을 볼때마다 속에서 무언가 이상하게 작아졌다. (중략) 타인을 주거지와 부모의 직업으로, 재력으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교양있는 시민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천박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런 태도가 형편없다는걸 알면서도 그들의 지나가는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선을 그은 다음 나 자신을 아래에 위치시키고 거리를 뒀다. (p.103)
코인은 그저 거들뿐
소설의 주요 스토리라인은 이더리움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락 내리락 하지만
코인은 그저 내용을 이끌어가기 위한 수단이자 대리만족의 매개체일뿐이다.
그보다, 팍팍하고 녹록치 않은 현실에 한줄기 사이다가 되어주는 대사들과 시원시원한 전개방식에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고 몰입했고, 안도했다.
"야! 네가 그럴 자격이 왜 없냐? 그럴 자격 있다. 누구든 좋은 걸, 더 좋은 걸 누릴 자격이 있어.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 너도, 나도, 우리 엄마도, 그건 다 마찬가지인 거야. 세상에 좋은게, 더 좋은게, 더더더 좋은게 존재하는데, 그걸 알아버렸는데 어떡해?"
은상언니가 야광봉을 쥔 한쪽 팔을 허공에 쭉 뻗고서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걱정 마. 우리 저기까지 갈 거잖아."
노란 빛살을 내뿜는 야광봉의 끝이 밤하늘의 달을 가리키고 있었다. 반쪽은 캄캄한 어둠 속에 잠겨 있고, 또 다른 반쪽은 시원하게 빛나고 있는, 아주 정확한 반달이었다. (p.194)
한탕을 노리는 요즘 세대에게 전하는 위로 카타르시즘
"열심히 일해서 월급모아 언제 내 집마련 할 수 있겠어?"
요즘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다보면 꼭 한번은 이쪽 길로 이야기가 샌다.
부동산 가격은 하늘을 치솟고, 월급만으로는 n백살에 아파트 입주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소처럼 묵묵하게 일하다 보면 잘 풀릴 것이라는, 그런 노력들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말들에 무뎌지다보면
'그냥 적당히 포기하고 살자'는 습관적인 상실감이 반복된다. 나의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은 일이다.
이제 한탕은 그저 꿈같은 도피처가 아니라,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숨구멍이자 또 하나의 진지한 해결비책이 되었다.
위로는 꼭 쓰다듬고 보듬어줘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상대가 그럴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것 만으로도
우울감은 누그러지고 슬픔은 어느정도 해소될 수 있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게 아니었네' 라는 생각은 내가 느끼는 우울함과 실망감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되려 역설적으로 희망을 불러 일으킨다.
"왜 또 이렇게 쓸떼없이 못되게 굴어? 요즘 일 안하니까 기운이 넘쳐? 여기서 계약 안 할 거면 그냥 나가자"
언니가 투정하듯 말했다.
"저 사람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했단 말이야"
"무슨 말?"
"나한테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 너한테 그정도면 충분하다는 말. 난 그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은상언니가 목소리를 낮춘채 이어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을 정말로 싫어한다고. 그렇게 사람을 아래로 보면서 하는 말이 어디 있느냐고. 그런 말을 들을때마다 '그 정도'라는 말 앞에 '나한테는 아니지만'이 생락된 것 같다고 했다. 나한텐 아니지만 너한테는 그정도면 족하지. 그정도면 감사해야지. 그런말들. 기만적이라고 했다. 그런종류의 말을 하는 사람의 면면을 잘 봐두라고 했다. 그게 정말로 자신을 포함한 누구에게나 모자람없이 넉넉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인지를. (p.309)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장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누구나 더 행복해질수있고, 본인에게 주어진 '그 정도'보다 더 많이 누릴 수 있다.
코인을 통해 해소된 세사람의 갈증은 마지막 책장을 덮고 현실로 돌아온 내게
나의 부스터는 무엇일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래, 포기하지 말자!!!
직장 생활을 하고있기에 책이 재밌었고, 투자를 하고 있어 더 재밌었다.
가볍게 읽기도 좋고 오락성이 짙은 장편소설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평범한 일상에 지쳐 인생 한탕의 고공행진을 보고싶은 사람 누구에게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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